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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한국 가톨릭교회 사형폐지운동 발자취

홍보부 2015-03-05 조회  820

한국 가톨릭교회 사형폐지운동 발자취

“흉악범은 사형 마땅” 편견 맞서 생명 수호 앞장
1989년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 창립으로 본격 활동
사형제도폐지소위 설립… 전 교회 차원 운동 발돋움
인식과 제도 개선 위해 ‘생명·이야기 콘서트’ 등 개최
발행일 : 2015-03-01 [제2933호, 6면]

어느 시대든 가톨릭교회와 사형폐지운동의 만남은 필연적이다. 

교회는 “생명의 권리는 최우선적이며 근본적인 권리로서 다른 모든 인권의 필수 조건이다…인간은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자연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발전의 모든 순간에서 그리고 건강하든 병들었든 성하든 불구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모든 상황에서 생명권의 주체”(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 38항)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형제도 폐지를 향한 교회 안팎의 움직임은 오랜 기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형제도가 범죄를 억제할 것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 흉악범은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국민감정은 사형폐지운동이 뜻있는 지식인들이나 소수 인권운동가 등을 중심으로 한 움직임에 머물게 했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있는 ‘착한 사마리아인’(The Good Samaritan)들의 몸짓은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암흑의 벽에 조금씩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혹독한 독재에 눌려 있던 생명을 향한 발걸음은 1980년대 말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1987년 6월 항쟁을 분수령으로 교회는 사형폐지운동이 사회 저변으로 확산될 수 있는 물꼬를 터나갔다. 이를 바탕으로 1989년 5월 30일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이하 사폐협) 창립이라는 결실을 일궈냈다. 사폐협의 모체는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각 종단의 종교인들과 자원봉사자 124인으로 구성된 ‘서울구치소 교화협의회’였다. 

2000년을 전후해 사형폐지운동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교회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서명운동 등 조직적인 활동을 펼쳐나갔다. 이를 계기로 사형폐지운동은 이전과는 달리 대중성을 띠며 범국민운동, 생명의 존엄성에 초점을 맞춘 생명문화운동으로 승화되는 기틀을 마련한다. 이 시기 교회는 사형제도를 안락사, 낙태 등과 함께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죽음의 문화로 간주하고 2000년 한 해 동안만이라도 사형집행을 중단하자는 운동을 펼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사형폐지운동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된다. 대희년을 갈무리하던 2000년 10월 가톨릭교회의 주선으로 각 종단 사형폐지 운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12월에는 대표자 모임이 이어졌다. 이듬해에는 가톨릭을 비롯한 불교 개신교 원불교 천도교 등 7대 종단 지도자들이 망라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연합’(이하 범종교연합)이 발족됨으로써 사형폐지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교회가 우리 사회에 안긴 또 하나의 보화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산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이하 사폐위) 설립이라고 할 수 있다. 각 교구 교정사목 담당자 등 10명의 위원들이 2001년 5월 23일 첫 모임을 가짐으로써 모습을 드러낸 사폐위는 주교회의 차원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일 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가 사형폐지에 발 벗고 나설 수 있는 새로운 디딤돌을 마련한 것이었다. 

이후 사폐위를 중심으로 한 사형제도폐지운동은 인권단체와 이웃종교, 시민사회단체 등은 물론 정부기관, 국제기구 등으로 연대와 활동의 폭을 넓히며 사형제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전기를 마련해오고 있다. 

사폐위는 범종교연합을 따라 지난 2002년 4월 24일 서울 대각사에서 처음 연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종교인 기도회’를 비롯해 그해 5월에 열린 ‘용서와 화해를 위한 시민음악회’, 4~5월에 걸쳐 매주 토요일 서울 명동에서 마련한 사형폐지를 위한 ‘가두음악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또한 이때부터 거의 매년 일본 홍콩 등 아시아지역은 물론 미국 영국 스페인 등 서구권에서 열린 사형폐지 국제행사에 한국교회 대표를 파견, 사형제도 폐지운동의 지평을 넓혀오고 있다.

아울러 10년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된 우리나라가 제도적으로도 완전한 사형폐지국가가 되길 바라는 뜻을 모으고자 지난 2008년부터 전국 각 교구를 순회하며 ‘사형제도 폐지 기원 생명·이야기 콘서트’를 여는 등 사형폐지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오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교회는 지난 제15대 국회(1996~ 2000) 때부터 18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국회 차원에서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이 발의될 수 있도록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 

교회는 현 19대 국회에서도 사형폐지특별법이 통과되기를 바라며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의 마음을 모은 서명을 국회에 전달하는 등 사형폐지운동이 단지 몇몇 뜻있는 신자들의 관심사에 머물지 않고, 선의의 모든 이들이 함께 연대해 이뤄내야 할 소명임을 각인시켜오고 있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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