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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 작은 호떡으로 새 희망의 ‘제2막 인생’ 시작

홍보부 2014-12-29 조회  924

교구종합
[새해 새 아침] 작은 호떡으로 새 희망의 ‘제2막 인생’ 시작
희망을 여는 사람들 / ‘호떡장수’ 김영석 도미니코씨
2015. 01. 01발행 [1296호]





























▲ 작은 호떡을 팔며 희망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김영석씨가 자신이 만든 호떡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정훈 기자




“IMF 사태가 일어난 게 제 잘못입니까? 재판장님, 3년은 너무 가혹한 것 아닙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2010년 겨울, 재판정에 선 김영석(도미니코, 51)씨에게 3년형이 선고됐다. 인생 최대 절망이 찾아온 순간이다. 한때 수산업계에서 잘나가던 총판 도매상이었던 그가 1997년 ‘IMF 사태’로 부도를 맞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지 12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받은 것은 ‘경제사범’ 딱지였다. 동시에 지난 인생도 모두 과거의 꿈처럼 날아갔다. 착하고 성실하게 일만 하던 그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아픔이었다. 그에게 다시 희망은 없을 것 같았다.

그로부터 4년 뒤인 지난 12월 19일 오후 서울 신월동 신영시장 입구. “담백한 기름 없는 호떡입니다! 한 번 맛보고 가세요.” 겨울 찬바람이 더해진 이날, 저마다 양손 가득 먹을거리를 사 들고 오가는 이들 사이로 재래시장의 정겨움을 더하는 김씨 목소리가 들렸다.

“이 겨울, 출출할 때 기름 없는 현미찹쌀 호떡 하나면 최곱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지나던 행인이 다가와 한 봉지를 선뜻 사갔다. 김씨는 연신 “허허허” 웃으며 이내 다시 반죽을 떼어내 손바닥 크기 호떡을 빚었다.

“세 군데 일을 봐주고, 더불어 목 좋은 곳을 새로 알아보러 다니느라 요즘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잘 살펴보면 장사할만한 곳이 많거든요. 올해 10개가 목표입니다. 하하.”

김씨가 호떡 가게 문을 연 것은 3개월 전이다. 서울의 한 골목에서 호떡 장사를 하는 부자(父子)의 노점 가게 앞으로 사람들 줄이 끊이지 않고 서 있는 걸 목격하고 “이거다” 싶어 뛰어들었다. 장삿일을 전수받은 그는 조금씩 사업을 키웠고, 3개월 만에 서울 용답역 인근, 응암동 등 세 군데에 가게를 차렸다. ‘호떡 프랜차이즈 사장님’이 된 그는 지금 가게별 고용인을 두고 월급을 주며 매일 가게당 30~40만 원 매출을 올리고 있다. 

과거 그는 수산물 도매상을 하며 잘 나갈 때엔 하루 5톤 트럭 6~7대 분량에 달하는 수천만 원 상당의 산지 직송 수산물을 서울 100여 군데 식당과 수산시장 등지에 팔았다. 그의 말대로 “지갑에 돈이 너무 많아 목욕탕도 마음 놓고 가지 못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IMF 사태가 터질 줄은 누가 알았으랴.

“강남의 그 수많은 빌딩에는 사무실이 텅텅 비고, 소비심리가 곤두박질치면서 자연스럽게 수산업도 몰락을 맞게 됐어요. 하던 사업은 물론 십수억 빚을 얻어 열었던 횟집도 망했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입니다.”

어쩔 수 없이 그의 가족 세 식구는 필리핀으로 달아났다. 그곳에서도 가구공장, 무역업 등을 했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2010년, 김포공항에 당도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경찰에 체포됐다. 3년형 선고 뒤 12개월로 감형받고 2011년 출소했다.

수감과 동시에 아내와 이혼까지 하고 결국 혼자가 됐지만, 그는 이 악물고 ‘제2막 인생전략’을 짰다. 그리고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가 하는 출소자 지원사업인 ‘기쁨과 희망은행’에서 2000만 원을 대출받은 뒤 호떡 장사와 함께 물류업을 하면서 새 희망을 일구고 있다. 그는 “전처와 사는 아들 학비와 양육비 걱정은 크게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하늘로 나는 비행기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가족과 이별하게 된 것도 돌이킬 수 없는 제 과오입니다. 하지만 지금 삶은 돈 걱정 없이 살았던 전보다 더 편하고 기쁩니다. 작은 호떡 장사를 통해 저처럼 희망이 필요한 출소자나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희망의 전도사’가 되고 싶습니다.”

쉼 없이 울리던 전화를 받고 난 김씨가 “전에 봐놨던 대림동의 목 좋은 곳에서 연락이 왔네요”라며 다시 미소 지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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