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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생명의 도시'행사를 통해 본 사형 폐지 염원

홍보부 2012-12-12 조회  1859

[세상살이 복음살이] ‘생명의 도시’ 행사를 통해 본 사형 폐지 염원

- 가톨릭신문에 비친 세상
“하느님께서 생명의 주관자란 진리 거스르면 죄악”
사형제, 범죄 억제 기여한단 명백한 증거 없어
절대적 종신형 등 다양한 교정 수단 고려해야
죽음·보복의 문화 생명·상생의 문화로 바꾸길
 
발행일 : 2012-12-09 [제2823호, 9면]
 
 ■  세상 모든 곳을 ‘생명의 도시’로

▲ 생명 수호의 뜻을 담은 조명 글씨가 구 서울시청 청사 등의 건물에 하나둘 아로새겨지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생명의 빛으로 죽음의 그늘 거두소서!”

‘No Death Penalty’ ‘죽음에서 생명으로’ ‘생명 문화’ ‘사형폐지’.

생명 수호의 뜻을 담은 조명 글씨가 구 서울시청 청사에 하나둘 아로새겨지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세계 사형반대의 날을 맞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11월 30일 오후 7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마련한 ‘생명의 도시’(Cities for Life) 행사에 함께한 이들은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뜨거워지는 가슴을 체험했다. 흉악범죄가 터질 때마다 사형 집행 재개의 목소리가 들끓었던 한 해의 끝자락, 숨죽여왔던 생명 사랑의 외침이 가쁘게 쏟아져 나왔다.

‘사형수들의 대모’ 조성애(81·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수녀는 이날 행사에서 “사형제도가 여태껏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앙인으로서, 또 문명인으로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모든 생명의 주관자는 창조주 하느님뿐이라는 진리를 거스르는 일은 죄악”이라며 사형제도 폐지를 촉구했다.

‘생명의 빛’을 밝히는 ‘생명의 도시’ 행사는 같은 날 서울을 포함한 전 세계 80여 개 국 1500여 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려 생명을 향한 열정을 달궜다.

김양희(글라라·48·서울 개포동본당)씨는 “같은 날 전 세계 곳곳에서 이렇게 많은 이들이 함께 마음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에, 진리로 하나가 되게 하시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하루빨리 사형제도가 사라져 주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로마에 본부를 두고 있는 가톨릭 평신도단체인 산 에디지오(St. Edigio)공동체가 지난 2002년 각 나라의 주요 도시에 참여를 제안하면서 시작된 이 행사는 지난해 87개국 1433개 도시에서 개최되는 등 갈수록 참가자가 늘고 있다.

■ 사형제도에 대한 인식

“우리나라가 사형폐지국가라고요?”

“흉악범은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켜야 합니다.”

서울시청 인근 거리에서 만난 이들의 말은 우리나라의 인권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형 집행이 중단된 지 15년이 됐지만 사회 곳곳에 퍼져있는 이러한 모습은 생명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사회는 물론 신자들 사이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지상의 성전과 함께 항상 시대의 징표를 바라보며 마음의 성전을 지어가야 하는 소명을 통해 이 땅에서 하느님나라의 영토를 넓혀왔다. 수천 년에 걸친 그리스도인들의 이러한 여정에서 사형제도는 가장 오래된 형태로, 가장 완고하게 버티고 선 장애물이라 할 수 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하느님께서 지은 질서에 대한 인간의 무지로 인해 사형제도가 수천 년이라는 세월동안 인간 세상을 억눌러오고 있으며, 이런 현실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 잘못된 인식

많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사형제도가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 있다. 사형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거나 억제할 수 있다는 이런 주장은 사형제도의 존속을 찬성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어 왔다. 그러나 각종 통계자료와 연구 결과 등은 이 같은 인식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다.

유엔은 지난 1988년과 2002년에 실시한 ‘사형제도와 살인율의 상관관계 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형제도가 무기징역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데 실패했다”고 선언하고 “사형제도가 종신형과 같이 그 위협도가 떨어진다고 간주되는 다른 형벌에 비해 보다 큰 살인 억제력을 가진다는 가설을 수용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자세”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국제엠네스티는 연례 보고서에서 “사형제도가 범죄 억제 효과를 가진다는 어떠한 명백한 증거도 없음이 여러 연구 결과에서 드러났으며, 아울러 그러한 모든 연구들에 내재해 있는 방법적 어려움들에서 보듯이, 사형제도를 공공정책화하기 위한 토대로써 범죄 억제 가설에 의존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형제도를 폐지했을 때 범죄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살인에 대한 사형을 폐지하기 직전인 1975년을 기점으로 인구 10만명당 살인율이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1975년 당시 3.09명이던 것이 1980년에는 2.41명, 그리고 사형을 폐지한지 25년이 지난 2001년에는 1.78명으로 줄어들어, 1975년에 비해 42%나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재승(미카엘) 교수는 “많은 범죄가 충동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범행 시 대부분이 사형의 두려움보다는 도피 등의 방법으로 범죄 행위를 감추려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형제도가 별다른 효과를 가질 수 없다”고 밝힌다.

■ 사형폐지운동 역사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우리 사회의 움직임은 오랜 기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 이는 엄혹한 독재정권 아래서 사형폐지운동이 뜻있는 지식인들이나 소수 인권운동가 등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이뤄져 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해있던 사형폐지운동은 2000년 대희년을 계기로 범종교적인 운동으로 확산됨으로써 새로운 지평을 맞이하게 된다. 천주교를 비롯한 개신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등 7대 종단 종교인들이 2001년 1월 19일 결성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연합’은 사형폐지운동이 종교계뿐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새롭게 분출하는 이정표가 됐다. 이후 종교계를 필두로 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정치, 문화·예술계 등으로 저변이 확대되면서 사형폐지운동은 새로운 활로를 찾아나가고 있다.

아울러 과거 성명서 발표나 기자회견 등 입장 표명 수준에 머물던 사형폐지운동은 각종 학술 행사를 비롯, 문예공모전, 연극제, 음악회 등 다양한 형태의 문화행사와 각 종단 원로들의 사형수 방문, 국회 및 행정부를 대상으로 한 활동 등 다채로운 모습으로 확산됨으로써 ‘생명문화의 건설’의 든든한 밑거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 사형제도를 둘러싼 흐름

- 사형제 폐지 추세 확인

국제엠네스티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전 세계 198개국 중 모든 범죄에 대해 완전히 사형제도를 폐지한 나라는 96개국에 이른다. 또 전쟁범죄를 제외한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한 9개국과 10년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법률상으로는 사형이 존치하지만 정책적으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사실상 사형폐지국’도 35개국에 이르러 법률상 또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은 전 세계적으로 140개 나라에 이른다. 또 지난해 전 세계에서 사형을 집행한 나라는 10%에 불과한 20개국에 그쳐 보편적 인권과 사형제도가 양립될 수 없다는 원칙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 사형제를 종신제로

인류는 각종 제도와 문명 수준 등의 발달로 범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과 다양한 방법을 갖추게 됐다. 이는 곧 사형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보유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형제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그 사회의 미성숙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 등 다양하고 발달된 교정 수단과 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과거에 얽매여 대체형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는다면 주인이 맡긴 탈렌트를 땅 속에다 묻어두고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무지한 종이나 다름없다. 신자들부터 사형제도가 비그리스도교적이며 비인도적인 제도라는 인식을 명확히 하고 십자가상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범에 따라 죽음과 보복의 문화를 생명과 상생의 문화로 바꾸어 나가는데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교회는 “생명의 권리는 최우선적이며 근본적인 권리로서 다른 모든 인권의 필수 조건이다… 인간은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자연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발전의 모든 순간에서 그리고 건강하든 병들었든 성하든 불구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모든 상황에서 생명권의 주체”(평신도 그리스도인 38항)라고 강조하고 있다.

- 주요 대선 후보들의 입장

오는 12월 19일 치러지는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사형제도로 드러나는 인권 지형이 획기적으로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지난 11월 27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와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발표된 주요 대선 후보에 대한 정책평가는 향후 사형폐지운동의 진로를 읽을 수 있게 해준다.

교회의 사회교리에 입각해 이뤄진 대선 후보들의 정책 공약 평가에 따르면, 여당인 새누리당 박근혜(율리아나·60) 후보는 사형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야권의 문재인(디모테오·59) 후보는 사형제를 폐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2010년 11월 서울 혜화동 일대에서 펼친 세계적 사형폐지기원 행사 ‘생명의 도시’ 모습. 이러한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 사형폐지소위는 사형 폐지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왔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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