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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가족 잃은 피해자지만 가해자처럼 살아가요'

홍보부 2010-08-03 조회  2396

[평화신문 2010년 8월 1일자 [1079호, 8면] 기사내용입니다.]

[▲ 사진설명 : 1. '우리는 범죄 피해자지만 가해자처럼 살아가요.'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가 살해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한 마음여행에서 이영우 신부와 심리치료사가 범죄피해자 ㄱ씨를 위로하고 있다.

2. 살인 피해자 가족들이 지난 6월 서울 성북구 삼선동 사회교정사목위원회 교정사목센터에서, 한국을 방문한 '인권을 위한 살인피해자 가족모임'(MVFHR) 회원들에게 살인 피해자로 살아가는 아픔을 털어놓고 있다.]

[이땅에 평화를] 살인 피해자 가족 지원 현황과 과제

'가족 잃은 피해자지만 가해자처럼 살아가요'


최근 몇 년간 흉악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범죄 피해자도 속출하고 있다. 성폭행, 강도, 연쇄 살인사건 등으로 누군가는 속수무책으로 강력 범죄를 당하고 범죄 피해자로 살아간다. 범죄는 늘어나고 더 흉악해졌지만 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과 복지는 범죄 피해 정도에 상응하는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강력 범죄로 정신적ㆍ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살인 피해자 가족들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사례1

김 마리안나(63)씨는 5년 전 외동딸을 잃었다. 딸과 사귀던 남자친구가 딸을 살해한 후 자살했다. 극심한 실의에 빠진 김씨 부부는 자녀를 잃은 모임을 찾아다녀야 했다.

딸을 잃은 상실감도 고통스러웠지만 이웃들의 수군거림은 우울증에 시달리게 했다. 상처를 잊으려 노인복지관을 다니며 목욕 봉사를 했다. 남편은 퇴직을 했고, 김씨는 2년 전 생계를 위해 건물 청소일을 시작했다. 그는 가해자에게 보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가해자가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가해자 가정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할 수도 있었지만 가해자의 가정형편은 김씨보다 훨씬 어려웠다.

 
#사례2

부산에 살던 김 클라라(56)씨는 8년 전 남편이 회사 직원에게 살해를 당했다. 대학생인 아들, 딸과 함께 서울로 집을 옮겼다. 부산에서 40년 넘게 살았지만 남편이 부산에서 구청장을 지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전업주부로 봉사활동을 하며 살았던 그는 생계를 위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부동산 사무실을 열었다. 그러나 1년도 채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쉽지 않았고, 사기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는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는커녕 친한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이웃 주민이 남편을 궁금해 하면 주말부부라고 숨겼다. 그는 최근에 살던 아파트를 팔고 전셋집으로 옮겼다. 박씨는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적 피해는 물론 막막한 생계에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산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전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은 2007년 2104건에서 2008년에는 2655건으로 26% 증가했다. 또 5대(살인ㆍ강도ㆍ강간ㆍ절도ㆍ폭력) 강력범죄도 51만7904건(2006년)에서 54만3534건(2007년), 54만5067건(2008년) 등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범죄 발생 건수에 비례해 범죄 피해자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1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강력 범죄 피해자 17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2.9%가 저소득층인 것으로 밝혀졌다.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긴급 경비와 생활비 보조 등 금전적 지원이라는 응답이 37.4%로 가장 높았다. 57%는 범죄로 인한 경제적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 범죄피해 구조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7년이다. 범죄 피해자를 위한 지원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실질적 지원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범죄 피해자의 권리장전인 '범죄피해자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체계적 보호ㆍ지원 시스템이 틀을 갖춘 건 2006년에 와서다.
 
김 클라라씨는 '사고가 난 당시에는 구조금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면서 '최근에 알아보니 이미 지급 신청 기한이 지나 구조금 신청이 불가능했다'고 했다.
 
범죄피해 구조금 최대 3000만 원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급하는 범죄피해 구조금은 현재 최대 3000만 원이다. 그러나 구조금을 신청하지 않으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절차도 복잡하다. 가족을 잃고 망연자실한 피해자가 사망진단서, 사체검안서를 비롯해 피해자가 생계를 유지해온 사실을 입증할 서류를 지방검찰청 범죄피해 구조심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그나마 이달부터는 구조금 지급 요건이 완화된다. 지금까지는 범죄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가 도주했거나 신원이 분명하지 않고, 또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구조금을 신청할 수 있었다. 이번 달부터는 가해자의 재산과 경제력에 상관없이 구조금을 신청할 수 있다.
 
동국대 박병식(유스티노, 법학과) 교수는 '문제는 구조금을 피해자들이 직접 신청하게 하는 것'이라면서 '최대 3000만 원인 구조금도 외국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2005년 말 전국 지방검찰청과 연계해 전국 각지에 범죄피해자 지원센터를 설립했다. 지원센터는 범죄 피해자에 대한 상담, 긴급 생계비 및 장학금 지급, 협력병원을 통한 치료비 감면 등 혜택을 주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지원센터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극도의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이 스스로 자신에게 적합한 구조기관을 찾아 각종 지원제도를 알아보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스트레스, 정신건강 '심각' 수준

 이에 따라 대검찰청은 지난 5월 범죄 피해자에게 피해자 권리를 통지해줄 것을 의무화했다. 즉 경찰이 피해자에게 경제적 지원 및 상담 지원 등을 신청할 수 있음을 고지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지원, 상담 지원, 정신과 치료 등 모두 여전히 피해자가 직접 신청해야 받을 수 있다.

 3년 전 20살 된 딸을 연쇄살인범에게 잃은 신 프란체스카씨는 '피해자를 위한 체계적 전담팀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면서 '사고 직후에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무 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피해자들을 꾸준히 체계적으로 돌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살 충동과 우울증은 물론 고립감, 악몽, 언어 장애, 수면 장애 등 만성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살인 피해자들을 위한 정신적 지원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큰 문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최근 연구 발표에 따르면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스트레스(43.81점)는 외상 스트레스 장애 환자 집단의 평균값(39.10점)보다 높다. 연구원은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정신건강 상태(18.81점)가 정신질환자 수준(19.45)에 근접하다고 발표했다.

 또 강력범죄 피해자 3명 중 2명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힘들다'고 답했고, 3명 중 1명꼴로 사건 후 가족과 대화가 단절된 것으로 드러났다.

마음의 상처 치유 기회 제공을

 박병식 교수는 '우리나라 범죄 피해자 지원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살인 피해자들을 위한 정신적 지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며 '평생 아픔을 안고 갈 피해자들에게 일회적인 경제적 지원만이 아니라 실질적 의료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6년 11월부터 살인 피해자 자조모임 '해밀'을 운영하고 있는 이영우(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신부는 '살인 피해자들은 어디 가서 실컷 울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다'면서 '긴급 구조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신부는 '이들은 주변 사람들 시선, 경찰관의 태도, 사건에 대한 호기심 위주의 언론보도 등으로 2, 3차 피해를 입고 바깥 세상과 차단해 살게 된다'면서 '종교 및 민간단체들이 이들을 위한 정신적 지원 활동을 펼치도록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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