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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 '수인들의 큰 엄마로 40년'

교육홍보 2009-11-05 조회  2489

[아래는 10월 28일 교정의 날을 맞이하여 평화신문(2009년 11월 1일)에서 수원교구 교정사목봉사자 한영자 님을 인터뷰한 기사 내용입니다.]

[▲ 사진설명: 수원교구 교정사목봉사자 한영자씨.]

'수인들의 큰 엄마로 40년'

수원교구 교정사목봉사자 한영자씨

'이놈 자식, 또 들어왔어?'

 한영자(아가타, 71, 수원교구 안양 중앙본당)씨가 덩치가 산만한 재소자 ㄱ씨의 등짝을 '퍽' 소리 나게 내리치며 야단을 쳤다. ㄱ씨는 엄마에게 꾸중을 듣는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숙이고 연신 뒷머리만 긁적였다.

 한씨는 교정사목 봉사자로 40년째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듯' 들락거리고 있다. 40년쯤 되면 체념도 하련만 한씨는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죄를 짓고 들어와 앉아 있는 재소자들을 보면 실망스럽다 못해 울화통이 터진다. 한씨는 '우리 사회에 출소자들이 설 곳이 없는 터라 재범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왜 안 두려웠겠어요? 처음 수의(囚衣)를 입은 사람을 봤을 땐 벌벌 떨었는걸요.'

 교정의 날(10월 28일)을 맞아 만난 그는 고령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의욕이 넘치고 젊어 보였다.

 유치원 아이들의 재롱잔치를 교도소에서 열자는 유치원 원장 수녀 제안으로 그가 교도소라는 곳을 처음 들어가 본 것은 32살 때인 1970년이다.

 '그날은 성탄 전 영세식이 있는 날이었어요. 한 재소자가 세례를 받으며 눈물을 펑펑 쏟는 모습을 보고 인간으로서 죄는 남아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다 용서해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그는 매주 목요일 미사와 교리공부 때 간식을 준비하는 등 교도소 수인들을 위해 봉사하기 시작했다. 한 출소자가 '가톨릭은 너무 메말랐다'며 불평하는 소리를 듣고는 직접 후원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교구에 교정사목위원회가 없던 시절이라 지원을 호소할 데도 없었다. 도움은커녕 어느 신부에게서 '신자가 주제넘게 교도소에 사람들을 끌고 다닌다'는 지적을 받았다. '차라리 양로원을 돕지, 도와줄 데가 없어서 죄짓고 들어앉은 사람들을 도와주냐'는 소리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교정사목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에 봉사자들도 1~2년을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남들이 뭐라 하든 한결같이 착하고 예쁜 자식들 같아요. 가정환경이 어렵거나 생활 여건이 안 좋아 죄 짓고 들어온 아이들이 많아요.'

 그는 미사에 참례하는 재소자들 간식을 대느라 장사란 장사는 다 해봤다. 우산, 가방, 미역 등을 떼다 판 돈으로 영치금을 넣어주기도 했다. 그는 재소자들이 형기를 마치기 전까지 밖에 나올 수 없는 교도소를 봉쇄수도원 이름을 따 '가르멜 공소'라고 부른다.

 많게는 1주일에 2번씩 교도소를 방문하는 그는 재소자들을 상담해주기 위해 상담사 1급 자격증과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까지 땄다.

 교구에 출소자 쉼터 '밝음터'가 문을 연 뒤 오갈 데 없는 출소자들을 집에서 재우는 일은 줄었다는 그는 '교정사목은 하느님이 주신 소명'이라며 '하느님이 건강을 허락하실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인들은 결국 다시 내 이웃으로 돌아올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경계하지 말고 따듯하게 감싸줘야 재범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밝고 따듯해지지 않겠어요? 교정사목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에요.'

김민경 기자 sofia@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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